[따져보니] "급발진 의심…운전자 무죄" 이례적 판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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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6.21. 오후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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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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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급발진으로 의심되는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운전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법원에서 매우 이례적인 판결이 나왔습니다.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따져 보겠습니다.

홍혜영 기자, 차량 결함으로 의심된다, 즉 급발진이 의심된다는 판결이 나왔습니까?

[기자]
네, 지난 2020년말 서울의 한 대학 캠퍼스에서 50대 운전자가 경비원을 치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는데요. 1심 법원은 판결문에 "차량 결함을 의심하기 충분하다"고 명시했습니다. 검사가 운전자 과실을 입증하지 못해 무죄 판결이 나온 적은 있지만, 법원이 급발진 가능성을 인정한 건 이례적입니다.

[앵커]
재판부가 어떤 점을 주목했습니까?

[기자]
운전자의 차는 지하주차장을 나와 우회전하다가, 갑자기 잔디밭으로 돌진했습니다. 피해자를 들이받은 뒤에도 13초 동안 시속 60㎞ 이상으로 달렸는데요. 재판부는 "13초 동안이나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해 계속 밟고 있었다고 보긴 어렵다"고 봤습니다. 또 운전자가 피해자를 피하려고 방향을 틀었고 여러 차례 브레이크 등이 켜진 점도 감안했습니다.

[앵커]
1심 판결이긴 합니다만, 다른 사건에도 영향을 줄 수 있겠네요?

[기자]
네, 지난해 말 강릉에서 급발진으로 의심되는 사고로 12살 이도현 군이 숨지고 운전자였던 할머니가 크게 다친 이 사건, 기억하실 겁니다. 전문가들도 운전 미숙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했지만, 국과수 결론은 '차량 결함은 확인되지 않았다' 였습니다.

하종선 / 변호사 (강릉 사고 유가족 법률대리인)
"13초보다 훨씬 2배 넘게 되는 30초 동안 가속 페달을 계속 밟고 있었다 착각해서, 이건 더 인정하기 어려운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제 대전 판결이 강릉 사건에도 도움이 되죠."

[앵커]
왜 이렇게 급발진 사고를 증명하기 어려운 건가요?

[기자]
현행법상 사고 원인을 비전문가인 운전자가 직접 증명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그렇다보니 급발진 의심 사고는 해마다 평균 60건 정도씩, 지난 2010년부터 모두 778건이 접수됐는데요. 이 가운데 급발진으로 인정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습니다.

정경일 / 변호사 (교통사고 전문)
"일반 소비자, 운전자가 입증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결국 제조사에서 이러한 차량 결함을 입증해야 되는데 본인이 불리한 거 입증할리 만무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결국 운전자의 조작 미숙, 운전자의 과실로…."

[앵커]
그래서 강릉 급발진 사고도 할머니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아빠가 뛰고 있는 거고요? 

[기자]
네, 도현 군 사고 이후 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입증 책임을 제조사가 지게 하는 개정안을 여야 모두 발의했습니다. 마침 내일 열리는 국회 정무위 소위에서 유가족이 올린 청원과 함께 법 개정을 논의할 예정입니다.

[앵커]
급발진 사고 가해자는 어쩌면 피해자일 수도 있다, 이런 거군요.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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