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 죽인 ‘막걸리 운전’ 범죄자의 뒷배 “대법원 양형위”

박효영 / 기사승인 : 2021-01-13 15:3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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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안전신문] 음주운전치사 범죄자 50대 남성 김모씨는 코로나로 거리두기가 강화된 지난 9월6일 조기축구 모임에 나갔다가 대낮부터 막걸리 잔치를 벌였다. 김씨는 혈중알콜농도 0.144% 그야말로 인사불성 상태로 운전대를 잡았고 그날 15시반 서울 서대문구의 한 햄버거 가게 앞에 있던 6살 남자아이 A군의 목숨을 앗아갔다. 김씨는 인도 위 가로등을 들이받고 쓰러트려 A군을 덮치게 만들었다. 김씨는 음주운전 전과가 있었다.


피해 유족들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피해 유족들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그런 김씨가 1심 법원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12일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11단독 권경선 판사는 윤창호법(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위험운전치사)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씨에 대해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유족들은 권 판사의 입에서 “징역 8년”이란 말이 나오자마자 “판사님 너무 하십니다. 이건 가해자를 위한 법입니다. 이건 아니에요”라고 강하게 항의했다. 둘째 아들 A군을 잃은 어머니 F씨는 한동안 법정에서 오열했다. 당초 검찰은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유족들은 선고공판이 끝난 직후 기자들에게 “재판부가 검찰 구형보다 2년 낮게 선고했다. 우리나라 사법부와 재판부가 원망스럽다”며 “반성문을 쓰고 자동차보험에 가입됐다고 형량을 낮춰주는 것이 말이 되는 판결인가. 가해자는 항소해 형량을 더 낮출 테지만 유족은 앞으로 평생 무기징역을 받고 사형을 받은 심정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한탄했다.


또 다른 음주운전 범죄자에 의해 친여동생을 잃은 언니 B씨는 7일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글을 올리고 이렇게 주장했다.


B씨는 “음주운전 왜 줄어들지 않는 건지 다들 알고 있다. 윤창호법이 생겼는데도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라며 “짧으면 3년에서 무기징역까지 하지만 무기징역이 확정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3년에서 길면 10년이 정말 최선일까?”라고 문제제기했다.


이어 “피해자와 합의를 했다는 이유, 초범이었다는 이유, 진심인 척 하는 반성문 몇 장, 학연과 지연과 돈으로 감형되는 현실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라며 “술 마시면 운전대를 잡을 생각조차도 들지 않게 더 강력하게 바뀌어야 한다. 절대 그 어떤 이유로도 감형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B씨의 여동생 C씨는 새해 첫날 22시 즈음 광주 광산구 장덕동의 한 사거리에서 신호대기 중이었는데 음주 도주극을 벌이고 중앙선 침범으로 역주행을 하던 20대 남성 D씨의 SUV 차량에 그대로 충돌하고 말았다. 결국 C씨는 미용 관련 창업의 꿈을 달성하기 직전 눈을 감았다.


F씨가 법정 밖으로 나오면서 오열했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 하고 있다. (캡처사진=YTN)
F씨가 법정 밖으로 나오면서 오열했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 하고 있다. (캡처사진=YTN)

권 판사의 양형 이유를 직접 들어보자.


권 판사는 “피고인의 음주운전으로 만 6세에 불과한 A군이 가로등에 머리를 부딪혀 결국 사망하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발생했다. 피고인은 음주운전으로 벌금형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어 엄중한 처벌을 해야 한다. 유족과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 못 했다. 피해자와 가족이 받았던 그리고 앞으로 겪게 될 충격과 슬픔은 잊기 어려워 보인다”면서 중형을 예고했다.


하지만 유족의 전언대로 권 판사는 반성문과 자동차보험 등을 김씨에게 유리한 양형 요소로 인정해서 징역 8년으로 결론냈다.


이 판결 소식을 전하는 기사들에 달린 댓글을 보면 모두가 권 판사를 나무란다. 유족들은 분하고 또 분하다. 수많은 음주운전 피해 유가족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난다.


F씨는 법정 앞에서 기자들에게 오열하며 “사람이 죽었어요. 8년이 뭐야. 애기가, 아무 죄없는 애기가 죽었어요”라고 호소했다.


관련 소식을 전하는 중앙일보 기사의 댓글란에는 판사에 대한 비난과 성토가 대부분이다. (캡처=중앙일보 홈페이지 댓글란)
관련 소식을 전하는 중앙일보 기사의 댓글란에는 판사에 대한 비난과 성토가 대부분이다. (캡처=중앙일보 홈페이지 댓글란)

하지만 음주운전 사건을 많이 맡아본 변호사에게 취재한 결과 오히려 이례적으로 엄히 선고된 것이라고 한다.


변호사 E씨는 “국민적 관심이 큰 사건이라 8년이 선고됐다. 8년이면 음주운전치사 사건에서 굉장히 이례적으로 높게 나온 판결이다.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사망하게 해도 그동안 우리 법원은 집행유예를 선고해왔고 그나마 윤창호법 이후에나 조금씩 실형 선고를 해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유족들이 "음주운전 살인죄"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캡처사진=YTN)
유족들이 "음주운전 살인죄"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캡처사진=YTN)

실제 윤창호법의 계기가 된 범죄자 박모씨도 징역 6년을 선고받았고 그 당시 기준으로 같은 혐의를 적용받은 피고인들 중에서는 역대 가장 무거운 판결로 처리된 것이었다. 그래서 故 윤창호씨 친구들이 입법 운동을 할 때 윤창호법의 형량을 하한 징역 3년이 아닌 징역 5년으로 살인죄와 동등하게 규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징역 3년 이상도 매우 중형이고 상해지사와 형량이 같지만 여전히 과실로 취급되는 음주운전치사와 때려 죽인 상해치사는 재판 과정에서 달리 판단된다. 상해치사는 중형의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지만 음주운전치사는 “술 마시고 운전해서 사람을 죽여야지” 또는 “술 마시고 운전해서 사람이 죽어도 뭐 상관없어” 정도의 미필적 고의가 부인되기 때문이다.


피고인 측은 국선 변호인만 선임해도 평소에는 성실하게 살아가는데 그날만 오랜만에 회식을 했고 딱 한 번 술 마시고 운전을 해서 그렇게 됐다고 변론할 수 있다. 진지한 반성을 하고 있다고 어필하면 된다. 제일 쉬운 것이 ‘고의성 부인’이고 ‘과실 요인 부각’이다. 아무리 “음주운전은 살인”이라는 구호를 외쳐봐도 아직까지 과실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공고하다. 특히 판사들 사이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만약 윤창호법이 징역 5년으로 규정됐다면 판사들이 과실로 보더라도 무조건 5년 이상을 선고해야 하기 때문에 더 중한 판결이 가능하다. 더구나 징역 5년이면 판사들이 무리하지 않는 이상 피고인들은 거의 실형을 피할 길이 없다. 징역 5년이라면 피고인을 감옥에 안 넣기 위해 판사가 작량감경(하한형의 절반 감경)과 집행유예(징역 3년 이하일 때 가능) 무려 두 번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3년이면? 바로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다. 막말로 70대 대기업 총수가 음주운전치사를 범했다고 치고 가장 비싼 변호인단을 꾸려 감형 요소를 끌어모아 어필한다면 집행유예를 받아낼 수도 있다.


A군의 아버지가 영정 사진을 들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캡처사진=YTN)
A군의 아버지가 영정 사진을 들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캡처사진=YTN)

이러한 일련의 인식이 총체적으로 반영된 게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 기준이다. 분명 윤창호법은 징역 3년 이상에서 무기징역까지 형량을 정해놨다.


2020년 4월20일 양형위는 윤창호법에 대한 양형 기준을 개정했는데 이에 따르면 △징역 2년~5년(기본 영역) △징역 4년~8년(가중 영역) △징역 12년까지(특별조정을 통한 최고형)로 규정하고 있다. 살인죄나 상해치사죄와 같은 고의범과는 결을 달리하는 양형 기준이다. 여전히 과실로 보고 있다는 증거다. 어찌됐든 권 판사는 김씨에 대해 8년을 선고한 만큼 가중 영역 최고치까지 적용을 한 것이다.


사실 양형 기준은 권고사항에 불과하다. 양형 기준을 안 따르고 판사가 그렇게 선고한 이유를 판결문에 적시하면 된다. 법률이 정한 형량이 강제되는 것이지 양형 기준이 강제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교통사고 전문 정경일 변호사(법무법인 LNL)는 매일안전신문에 “양형 기준은 그야말로 권고사항에 불과하다. 그런데 판사들은 보수적이라 거의 대부분 양형 기준 범위 안에서 판결을 한다”면서도 “판사들 중에서는 드물지만 양형 기준을 따르지 않고 선고를 하는 경우도 있긴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판사들이 2009년부터 2019년까지 양형 기준을 준수하는 비율은 89.7%에 이른다.


윤창호법의 내용을 좀 더 강화하는 것, 양형 기준을 좀 더 높이는 것 이전에 판사들이 그냥 법에 규정된 형량대로 선고하면 된다. 판사들이 판사 사회에서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생각 자체를 하기 이전에 유족들의 고통과 반복되는 음주운전 사고의 심각성을 상기해줬으면 좋겠다. / 박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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